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 노동 연맹 (문단 편집) === 스페인 아나키즘의 초기 === 17세기 중반에 제국으로서의 정점을 찍은 후 [[스페인]]은 각종 전쟁에서의 거듭 된 패배, 왕실, 귀족, 고위 성직자로 대표 되는 지배 계급의 역동성 상실, 경제적 몰락, [[신대륙]] 제국의 상실, 내부적 민족 갈등 등을 겪으며 19세기에 들어서는 시작 부터 [[나폴레옹]]에게 강냉이 펑펑 터지도록 두들겨 맞고, 그 이후에도 1820년대에 잠시 집권한 자유주의 헌법주의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[[루이 18세]]가 보낸 '성 루이의 10만 아들'이라고 이름 불린 2차 군사 개입, 그에 따른 왕위 계승 문제와 북부 [[바스크]], [[나바라]]지방 자치 문제를 두고 터진 [[카를리스타]] 내전을 통해 나라 꼴이 어디 몽둥이로 때려 청소한 카페트 마냥 너덜너덜해져 있었다. 정치적 상황이 이렇게 난장판이다 보니 문화적 성향과 사회적 개방성 또한 지속적으로 움추려 들어서 이 이후로 스페인은 주로 선진 문물, 사상 등을 주로 외국에서 수입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. 이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[[프랑스]], [[이탈리아]]와의 교류가 잦았던 [[바스크]]지방, [[카탈루냐]]를 중심으로 산업 혁명과 이에 따른 사회적, 정치적 여파가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. 이런 새로운 국가적 규모의 경제적, 사상적, 사회적 전환 중에서 동시대 유럽 전체를 휩쓴 [[샤를 푸리에]], [[앙리 드생시몽]], [[카를 마르크스]], [[프리드리히 엥겔스]], [[미하일 바쿠닌]] 등의 굵직한 사상가들로 대표되는 [[사회주의]]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. 스페인에 직접적으로 좌파 사상이 유입 되기 시작했던 1860년대, 7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옛 버릇 못 버리고(...)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, 서부 해안 발렌시아 지방 알코이 노동자들의 무장 봉기, 스페인 단일 왕국을 [[카스티야]], [[카탈루냐]], [[나바라]], [[안달루시아]] 등의 다양한 역사적 지방들의 연방 국가이자 입헌 군주국을 주장했던 칸톤주의자[* 스위스의 주들을 부르는 그 칸톤 맞다.]들의 혁명으로 무려 트리플 쌍쌍으로 내전, 아니, 식민지 쿠바의 첫 독립 무장 봉기 까지 합치면 네개의 내전을 겪으면서 또 정부는 보르본 왕정에서 엉뚱하게 이탈리아 출신 [[아마데오 1세]]를 왕으로 뽑은 입헌 군주국에서 또 [[스페인 제1공화국|제1공화국]], 그리고 이 제1공화국을 갈아 엎고 [[스페인 왕정복고|보르본 왕조가 다시 집권하며]] 4번이나 바뀌는 등 '''단일 국가'''로서의 스페인이 얼마나 취약하고, 무능한지 대내외적으로 똑똑하게 인증을 하던 시대이기도 했다. 이러니 본인들의 눈 앞에서 중앙 정부와 단일 국가가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꼴을 보고 살았던 스페인의 좌익 운동 1세대 지식인, 혁명가들은 나머지 유럽에서 [[1차 인터내셔널]]이 [[프롤레타리아 독재]]와 중앙 정부의 존재 여부를 두고 [[공산주의]]의 시조가 되는 마르크스파와 [[아나키즘]]의 시조가 되는 바쿠닌파로 쫙 갈라지자 자연스럽게 민족 국가와 수직적 관료제로 운영 되는 정부의 존재 자체를 악으로 보았던 바쿠닌 계열로 빠지게 되었다. 1868년 [[미하일 바쿠닌]]의 사상적 제자였던 주세페 파넬리가 1차 인터내셔널의 스페인 대표들을 모집하려고 온 마드리드에서 당시 칸톤주의 봉기와 노동 운동에 연관 되어 있었던 안셀모 로렌소 아스페리야, 프란세스크 페레르 과르디아 등의 지식인들과 만나며 스페인의 아나키즘은 첫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